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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국 은퇴, K리그 통산 기록과 월드컵 불운 등

by writainer 2020. 10. 26.

10월 26일 자신의 인스타그램을 통해 은퇴를 선언한 축구선수 이동국. 출처 : 이동국 인스타그램.


K리그 레전드 이동국(전북 현대 모터스)이 23년 동안의 프로 생활을 마무리한다. 이동국은 10월 26일 자신의 인스타그램을 통해 은퇴를 선언했다.


1979년생인 이동국은 포항제철고를 졸업하고 1998년 포항 스틸러스에서 프로 경력을 시작했다. 이때부터 한국 축구의 미래로 낙점을 받은 이동국은 1998 프랑스 월드컵에 출전하는 차범근호에 발탁되어 생애 첫 월드컵 출전의 꿈을 이룬다. 당시 0-5로 패했던 네덜란드전에 교체 출전한 이동국은 인상적인 중거리슛을 날렸고, 이후 K리그와 국가대표팀의 주축 선수로 성장했다.


국내에서의 활약을 바탕으로 2001년에는 독일 분데스리가 베르더 브레멘에 임대로 가기도 했으나 7경기에서 득점을 기록하지 못하고 돌아왔다. 그리고 2002 부산 아시안게임 금메달 획득에 실패한 뒤 상무에서 군 복무를 마쳤다.


다시 포항으로 돌아온 뒤 2007년에는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의 미들즈브러 FC로 이적했다. 하지만 두 시즌 동안 리그 무득점에 그치고 성남 일화 유니폼을 입으며 K리그에 복귀했다. 그리고 2009년부터는 전북 현대로 이적해 2020 시즌까지 12년 동안 뛰었다.


잠시 유럽 무대에 몸담기도 했으나, 경력의 대부분은 K리그에서 보냈다. 돈을 위해 유럽이 아닌 해외 리그(일본, 중국, 중동 등)에서도 뛰지 않았다. 그러면서 K리그 통산 547경기에서 228득점 77도움을 올렸다. 이동국은 K리그1 최다 득점 및 최다 공격 포인트 기록, K리그1 최다 MVP(4회, 2009, 2011, 2014, 2015) 수상 기록 보유자이기도 하다.


국가대표로도 105경기에 출전해 센추리 클럽에 가입한 이동국은 33골을 기록하며 2000년대를 대표하는 스트라이커로 평가받는다. 대한민국 국가대표팀 공격수 계보에서도 황선홍의 뒤를 잇는 스트라이커 하면 이동국이 첫 손에 꼽힌다.


대표선수로서 이동국의 절정은 2000년 AFC 아시안컵이었다. 레바논에서 열린 이 대회에서 이동국은 총 6골을 넣어 대회 득점왕에 올랐다. 그러나 우승을 노리던 한국은 3위에 그쳤고, 일본이 우승하는 것을 지켜봐야만 했다.


그러나 월드컵과는 좋은 인연이 아니었다. 만 20대도 되기 전인 1998 프랑스 월드컵에 출전하며 최소 3번 이상은 월드컵에 출전할 것으로 보였으나, 거스 히딩크 감독이 이끌던 2002 한일 월드컵 대표팀 최종 엔트리에 탈락하며 한동안 좌절의 시기를 보냈다.


조 본프레레 감독, 딕 아드보카드 감독 체제에서 다시 대표팀 부동의 스트라이커 자리를 되찾았지만 2006 독일 월드컵을 앞두고 십자인대 부상으로 다시 월드컵과의 악연이 이어졌다. 2010 남아공 월드컵을 통해 12년 만에 월드컵 무대에 복귀했지만, 16강 우루과이전에서 결정적인 득점 찬스를 놓치며 팀의 패배를 막지 못했다. 


이후 월드컵 예선에는 출전한 적이 있지만, 본선에는 나가지 못했다. 월드컵으로 한정하면 이동국은 비운의 스트라이커라고 할 수 있다.


한편 전북은 다가오는 11월 1일 홈인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대구 FC와 시즌 최종전을 치른다. 이 경기가 이동국의 마지막 경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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