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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는 우리말 이야기

#12 코로나19가 낳은 말, 왜 '사회적 거리두기'?

by writainer 2020. 9. 9.

재미있는 우리말 이야기 #12 사회적 거리두기

 

코로나19가 기승을 부리기 시작한 연초부터 전 세계적인 화두로 떠오른 것 중 하나가 바로 '사회적 거리두기'다. 전광훈 목사가 속한 사랑제일교회를 비롯한 보수단체들이 주도했던 광복절 집회 이후 코로나19가 빠르게 재확산되자 정부에서는 수도권 지역에 대해 사회적 거리두기 2.5단계를 적용했고, 이는 지난 4일에 한 차례 연장됐다. 최근 언론 보도에 따르면 수도권 사회적 거리두기 2.5단계를 다시 연장할지는 이번 주말께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고 한다.

 

그런데 이 '사회적 거리두기'라는 말은 도대체 무엇일까? 국어사전을 검색해보면 '전염병의 확산을 막거나 늦추기 위해 사람들 사이의 거리를 유지하는 감염 통제 조치 혹은 캠페인'이라는 사전적 정의가 나온다. 여기서 핵심이 되는 대목은 '사람들 사이의 거리를 유지'한다는 부분이다.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라 했으니 이는 곧 '물리적 거리두기'를 뜻한다. 물리적 거리두기라고 표현하면 더 쉽게 이해가 되는 개념인데, 왜 이 쉬운 말을 놔두고 사회적 거리두기라는 생소한 용어를 쓸까? 이건 영어의 영향이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해외에서는 오래전부터 'social distancing'이라는 말이 쓰였는데, 사회적 거리두기는 이를 그대로 번역한 것에 불과하다.

 

'사회적'이라는 단어는 '사회와 관계되거나 사회성을 지닌 것', '사회에 관계되거나 사회성을 지닌'이라는 뜻을 갖고 있다. 사회적 거리두기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는 되지만 확 와 닿지 않는 이유가 있었다.

코로나19로 인해 더 커진 혼밥 문화

영어 단어 'social'의 뜻을 굳이 살리고자 했다면 '사교적 거리두기'라 해도 괜찮았을 것이다. 결국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사람들끼리 사교적인 모임을 하지 말라는 뜻 아닌가. 취지를 생각해도, 그리고 'social'이라는 단어가 이 맥락에서 어떻게 쓰여야 하는지를 생각해도 '사회적 거리두기'보다는 '사교적 거리두기'가 좀 더 어울린다. 아니면 차라리 그냥 '물리적 거리두기'라고 쉽게 표현했다면 어땠을까?

 

SNS가 삶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너무나도 커진 지금은 '사회적 접촉'이라는 것이 꼭 '물리적 접촉'을 뜻하지는 않는다. 물리적으로는 떨어져 있어도 사회적으로는 연결되어 있을 수 있다. 이런 시대에 '사회적 거리두기'라고 말하는 건 물리적 거리두기 이상의 무언가가 포함되어 있다는 인상을 주기도 한다. 

 

세계보건기구(WHO)에서도 "우리는 물리적으로 같은 공간에 있지 않은 상태에서도 여러 가지 방법으로 서로 계속 연결돼 있을 수 있다"며 '사회적 거리두기'라는 말을 '물리적 거리두기'로 대체하기 위해 노력하겠다는 뜻을 지난 3월에 밝힌 바 있다. 이 움직임은 적어도 한국에서는 실패한 것 같다. 이래서 말은 처음 만들 때 신경 써서 만들어야 한다.

 

'사회적 거리두기'든 '물리적 거리두기'든, 아니면 '사교적 거리두기'든 중요한 건 하루빨리 코로나19를 종식시키는 일이다. 시국이 시국이다 보니 생각이 길어졌다. 사회적 거리두기란 말이 오랜 추억 속의 표현이 될 날이 오기를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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