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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는 우리말 이야기

#3 갈갈이 박준형, 가을에 부지런한 남자?

by writainer 2020. 7. 31.

재미있는 우리말 이야기 #3 갈갈이 박준형, 가을에 부지런한 남자?

 

요즘 사람들은 '갈갈이'하면 무엇을 떠올리는지 모르겠지만, 30대는 '갈갈이'라고 하면 인기 개그맨 박준형을 떠올린다. 얼마 전에 폐지된 KBS 개그 콘서트의 인기 코너였던 '갈갈이 삼 형제'에서 박준형은 '옥동자'라는 별명으로 유명했던 동료 개그맨 정종철, 그리고 이승환과 함께 툭 튀어나온 앞니로 무를 비롯한 많은 채소, 과일을 갈아대며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이 코너에서 가장 인기를 끌었던 대사는 바로 "무를 주세요"다. 처음엔 무를 갈다가 나중에는 수박, 멜론, 당근, 파인애플 등 무보다 더 갈기 힘들어 보이는 것들도 다 갈았다. 박준형은 지금도 개그맨 부부들의 삶을 보여주는 JTBC 예능 프로그램 '1호가 될 순 없어'에 출연해 갈갈이로 활동했던 시절 이야기들을 종종 하곤 한다.

 

단어의 뜻을 몰라도 박준형이 왜 갈갈이인지는 '갈갈이 삼 형제'를 한 번만 봐도 알 수 있다. 박준형이 자신을 갈갈이라고 칭한 건 툭 튀어나온 앞니로 무엇이든 잘 갈아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갈갈이는 원래 다른 뜻을 가지고 있는 단어다.

 

사실 '갈갈이'는 '가을갈이(다음 해의 농사에 대비하여, 가을에 논밭을 미리 갈아 두는 일)'의 준말이다. 치아를 이용해 무언가를 가는 행동과는 전혀 관련이 없다. 박준형이 '갈갈이'라는 단어의 뜻을 알고 쓰지는 않은 것으로 보이지만, 이 단어의 뜻을 알고 있는 사람이 '갈갈이 삼 형제'라는 코너를 보지 않았다면 개그맨 박준형이 가을에 무척이나 부지런하게 다음 해 농사를 준비하며 논밭을 가는 모습을 상상했을지도 모른다.

 

사람들이 '갈갈이'와 많이 혼동하곤 하는 단어로는 '갈가리'가 있다. 갈가리는 '가리가리'의 준말이다. 갈가리의 '갈'은 줄기 전의 어원 '가리'를 밝히기 위해 초성 'ㄹ'을 살린 경우다. 비슷한 예로 '가지가지'의 준말인 '갖가지'가 있다. 또한 '어제저녁'을 '엊저녁'으로, '고루고루'를 '골고루'로 줄이는 것도 이와 비슷하다.

 

참고로 '가리가리'는 '여러 가닥으로 갈라지거나 찢어진 모양'을 뜻한다. 그래서 '가리가리 찢어졌다'라고 할 때는 '갈가리 찢어졌다'라고 해야 맞다. '갈갈이 찢어졌다'라고 하면 틀리다. 이때 '갈갈이'는 '갈가리'의 잘못이 된다.

 

또한 '갈갈이'는 '갈고리'의 옛말이기도 하다. 갈고리는 많은 사람들이 아는 대로 '끝이 뾰족하고 꼬부라진 물건'이다. 치아는 사람에 따라 끝이 뾰족하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꼬부라지지는 않았다. 그래서 갈갈이 박준형이 '갈갈이'가 '갈고리'의 옛말이라는 점을 의식해서 스스로 갈갈이라는 이름을 지은 것 같지도 않다.

 

아무튼 '갈갈이 삼 형제'로 인기를 끈 박준형은 승승장구한 뒤 한때 침체기를 겪기도 했으나 최근 '1호가 될 순 없어'에 아내 김지혜와 함께 등장해 재미를 주고 있다. 지금도 '1호가 될 순 없어'에 나오는 박준형의 모습을 보면 그 시절 갈갈이가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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